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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론파_달한_아마미 란타로X아카마츠 카에데X사이하라 슈이치].png

오늘도 그저 평범한 일상 중 하루였다. 평범하게 빨래를 하고, 집 안을 청소하고… 이 일을 하는 데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갈 곳이 없던 사람을 데리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아카마츠 씨, 도와줄까?”

“으응, 아니야. 이제 곧 끝나는 걸.”

이렇게, 그녀의 곁에는 그녀의 친구가 있어줬으니까. 그녀의 옆집에 지내는 그는 언제나 그랬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를 미소로 반겨주면서 그녀는 마지막 이부자리를 널며 뿌듯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알록달록한 빨래가 바람이 부는대로 천천히 흔들렸다. 기분 좋은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금빛의 머리칼이 바람에 그대로 흔들렸다. 소년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옆으로 다가왔다.

“수고했어, 아카마츠 씨. 조금 쉬어도 좋을 것 같은데… 응?”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 뭘. 고마워, 사이하라 군. 사이하라 군 말대로 조금은 쉬어도 좋을지도!”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서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런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이 짧은 시간이 좋았다. 적당히 따뜻한 바람도 불었고, 거의 유일한 친구인 사이하라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예쁘게 한껏 차려입은 여자들이 많았다. 그녀는 고개를 가만 기울였다.

“사이하라 군. 오늘따라 꾸민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아? 무슨 행사라도 있는 걸까?”

“아카마츠 씨, 몰라? 오늘… 무도회가 열린다고 들었어. 왕자가 주최한다고 하던데.”

“응? 그런 소식 전혀 못 들었는데!”

그러고보니, 오늘따라 어머니랑 자매들이 한창 바쁘게 움직이곤 했었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만 여자들을 바라보다가, 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려하면서도 예쁜 성이었다. 정말 있을 건 다 있을 것 같은 그런 예쁜 성. 분명 그 성에는…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사이하라 군! 나도 무도회에 가고 싶어!”

“응? …가면 되잖아?”

하지만… 하며, 아카마츠가 가만 자신의 옷차림을 훑었다. 꽤나 해진 옷이었다. 이런 차림새로 간다면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자신에게는 그 어떤 말도 없었기에 자신을 무도회까지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자, 사이하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아카마츠 씨는, 무도회에 가고 싶은 거지?”

“으응, 그렇지만… 역시 이런 모습으로 가는 건… 무리겠지? 무도회까지 갈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고…”

“그건 걱정하지마, 아카마츠 씨.”

사이하라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손가락을 튕겨냈다. 탁, 손가락을 튕겨내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곧 하얀 수증기같은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더니, 아카마츠의 옷차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화려하면서도 그녀와 꼭 어울리는 음표 장식이 군데군데 자수로 새겨져있었다. 머리도 아까 전 보다 훨씬 더 단정해졌고, 난생 처음 보는 유리구두를 신고 있었다. 가만 보니 사이하라의 차림새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편한 복장이었던 사이하라의 복장은 곧 단정한 턱시도로 바뀌어져 있었고, 머리는 꼭 무스로 단정이라도 한 듯, 아까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가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그저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 뿐이었다.

“자, 아카마츠 씨.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했지? 같이 가자. 데려다 줄테니까.”

“응? 사이하라 군, 이게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까.”

그녀는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친구는 사이하라를 믿기록 했다. 천천히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이하라의 손을 조심스럽게 겹쳐잡았다. 그의 미소는 평소랑은 다른 좀 더 다정한 미소였다. 아, 맞아. 나는 이런 다정한 사이하라 군이 좋았던거지. 그녀와 그는 그렇게 서로 손을 마주잡고서는 천천히 성 쪽으로 걸어갔다. 기분 좋은 바람에 괜히 간질간질한 느낌에 그녀는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평소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서는 천천히 성 쪽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꽤나 한참을 걸었을까, 그는 돌연 멈춰서서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카마츠 씨. 이 무도회는 아마 새벽까지도 진행할 모양인데… 열두시가 되기 전까지는 돌아와야해.”

“응? 어째서?”

“…열두시가 지나버리면, 내가 아카마츠 씨에게 걸어준 마법이 풀려버릴테니까.”

그렇게 말한 사이하라가 머쓱하게 웃으면서 뺨을 긁적였다. 그녀는 그런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물어봐도 괜찮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천천히 성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둘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그 곳은 그녀의 상상만큼이나 화려하고 예쁜 곳이었다. 남녀가 함께 춤을 추고 있기도 했고, 음료수를 들고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무리들도 보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사이하라 군, 봐! 그랜드 피아노야!”

“그러게, 멋있다. 아카마츠 씨는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았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면서 천천히 그랜드 피아노 쪽으로 다가갔다. 빛나는 눈으로 천천히 피아노로 다가가서는 건반을 누르려고 한 순간에, 멀리서 천천히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 함부로 만지면 안됨다.”

“앗, 죄송해요.”

그 말에 그녀는 서둘러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옷차림새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남자였다. 그 옷이 꼭 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옷인 것 같았다. 녹빛의 머리칼에 편안한 느낌의 눈동자를 지닌 사내였다. 그녀는 그를 본 순간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왕자님이라면 분명 이런 분위기일거야. 라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님다. 피아노를 쳐보고 싶으신검까? 지금은 곤란해서요. 나중에, 무도회가 끝나면 한 번 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슴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잠시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분위기, 제 앞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되는 화려함을 지닌 남자, 이것들이 의미하는 건? 반짝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님?”

그녀의 한마디에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며 천천히, 대답하듯이 말을 이었다.

“처음 뵙겠슴다. 아마미 란타로라고 함다.”

아마미 란타로. 그저 평범한 평민에 속했던 그녀도 익히 들어온 이름이었다. 아마미 가문의 도련님. 그리고, 이 나라의 왕자님.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민망함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그, 죄송해요. 왕자님의 물건에 손을 대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고 있자니, 앞에서 소리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의 의미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웃는 듯한 그런 웃음. 그런 소리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가만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춤이라도 추지 않겠슴까? 부담스럽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슴다.”

지금 대단한 사람에게 받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에 그녀는 사이하라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사이하라는 그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잖아, 아카마츠 씨. 아카마츠 씨가 원한다면 가는거야.”

그의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지나, 싶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아마미에게로 다가갔다. 암묵적인 동의에 아마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왕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당당히 그의 손을 마주잡았고, 아마미와 아카마츠가 무도회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되어있을 동안, 사이하라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평소처럼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째깍, 째깍.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카마츠와 아마미는 둘이서 말할 것이 많았는 지, 조잘조잘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간중간 여자들이 아마미에게 말을 걸어오곤 했지만, 여자들과의 대꾸도 잠깐이었다. 곧 그는 아카마츠에게 다시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근처에 다가오는 여자는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그녀의 친구인 사이하라 뿐이었다.

“아카마츠 씨. 슬슬 열두시인 건 알지?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카마츠 씨는 천천히 나와.”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먼저 돌연 나가버렸다. 시계를 보니 정말 열두시까지 30분도 남지 않았었다. 슬슬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가도 왕자와 대화하는 것이 생각보다도 재미가 있었던 탓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런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점점 시간은 흘러갔고, 그녀는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몰랐다.

댕,

종이 한 번 울렸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계가 정확하게 열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이하라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마법이 풀려버린다고 했다. 그녀는, 왕자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에,

“아, 죄송해요, 가봐야 해서… 다음에 볼 수 있으면, 그 때…”

“아, 가야함까? 아쉽네요. 데려다 주겠슴다.”

“아녜요! 아냐! 괜찮아요! 정말로!”

댕, 댕,

종이 울릴수록 더 마음이 급해져간 그녀는 서둘러서 성에서 빠져나왔다. 성문밖에 늘어진 계단을 내려갈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지만, 당장 멈춰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급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유리구두를 신고 있다는 불안함이 문득 스쳐지나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빨리, 빨리. 그 생각만 들었기 때문에,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발목을 접질러버렸다. 짧게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직 내려가려면 멀었는데, 같은 생각을 했다.

“괜찮슴까?!”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괜히 더 마음이 급해져서는 일어서려 했지만, 접질러진 발목이 시큰거려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가 다가와서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 즘, 그녀의 주위에 수증기같은 안개가 꼈다. 곧, 그녀의 옷차림이 처음처럼, 해진 옷차림으로 변했다. 왕자는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민망함이 밀려왔다.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계단에는 그저 그녀의 유리구두만이 나뒹굴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지탱해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발목이 부은 것 같은데… 조금 쉬다가 가십쇼. 조금 가라앉으면 데려다 드릴테니.”

“아,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꼭 지금 가셔야한다면 어쩔 수 없슴다만… 웬만해선 쉬었다가 가셨으면 함다.”

자신의 모습을 보였는데도 왕자는 여전히 친절했다. 아카마츠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지? 그녀는 두근거리는 느낌에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거지? 물론, 왕자도 좋지만 사이하라 군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사이하라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아카마츠 씨가 원한다면 가는거야.─

“……괜찮아요? 제가 이런 모습이여도.”

“무슨 상관임까. 겉모습에 의의를 둘 사람으로 보인걸까요… 저는 상관없슴다. 아카마츠 씨는, 어떤 모습이여도 아카마츠 씨니까요.”

사이하라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녀가 이 왕자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라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죽쒀서 개줬네. 어때?”

“…시끄러워. 그런 거 아니니까.”

까칠하긴. 사이하라의 옆에 서있었던 남자가 툴툴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사이하라는 계단 밑에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있어서 작게 보였지만, 틀림없이 아카마츠와 아마미 왕자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카마츠 씨가 그게 좋다면, 나도 좋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가슴 한 켠이 조금 시큰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가장 바라고 있던 것은 그녀의 행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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