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론파_펠리카_키보X시로가네 츠무기].png](https://static.wixstatic.com/media/198f43_af43c3342d5b4c47bc8f80384fa6dff4~mv2.png/v1/fill/w_600,h_225,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5B%EB%8F%99%ED%99%94%EB%A1%A0%ED%8C%8C_%ED%8E%A0%EB%A6%AC%EC%B9%B4_%ED%82%A4%EB%B3%B4X%EC%8B%9C%EB%A1%9C%EA%B0%80%EB%84%A4%20%EC%B8%A0%EB%AC%B4%EA%B8%B0%5D.png)
조용한 방 안으로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굴러들어왔다. 늦은 밤에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일까, 오랜 비행 도중 휴식을 갖기로 한 새일까. 무심코 고개를 돌려 창가를 확인한 순간, 소년은 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그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창밖에 있는 것은 청백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이 방의 창문은 1층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이 맨몸으로 올라올 만한 높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게 꿈이 아니라고 말하듯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심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창가를 바라보았지만, 바깥의 인영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노크를 하듯 한 번 더 유리창을 두드린다. 그 손짓에 맞춰 귓가로 들려오는 울림, 그리고 어느샌가 그녀의 옆에 둥둥 떠다니며 반짝이는 무언가가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했다.
"저기, 들여보내 줄 수 있을까?“
속삭이는 그녀의 주변이 은은하게 빛나는 건 등지고 있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소년은 달빛에 홀린 양 창가로 다가갔다. 소년이 잠금을 푼 창을 열고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자, 그녀는 사뿐한 걸음으로 방 안에 발을 딛는다.
"당신은 누구시죠? 창문까지는 어떻게 올라온 건가요?“
"응, 내 이름은 시로가네 츠무기. 키보 군을 네버랜드로 안내해주기 위해 온 피터 팬이야.“
다급히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말은 수수께끼 투성이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가, 피터 팬은 어떤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고 네버랜드는 어느 장소를 가르키는 말인가. 새로운 의문이 키보의 얼굴에 드러나건 말건, 시로가네는 질문에 이어서 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건 어렵지 않아. 요정 가루만 몸에 골고루 뿌리면 되는 걸! 처음은 몰라도 수수하게 금방 익숙해지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건 무슨…. 우왓.“
시로가네를 따라 들어와 방 안에 떠다니던 광원이 키보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이 평범한 물체가 아니라 날개를 가진, 시로가네가 언급한 요정이라는 존재라는 걸 가까이서 확인한 뒤에야 알아챘다.
요정은 키보가 놀란 표정을 짓던 개의치 않고 작은 날개를 바삐 털어냈다. 은빛 머리칼과 창백한 피부, 검은 가쿠란 온 곳에 가루를 뒤집어쓰자 키보의 주변 역시도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요정은 제 할 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채인 키보를 두고 시로가네의 옆으로 돌아갔다.
"수수하게 충분히 뿌려진 것 같네. 그럼 같이 네버랜드로 가자!“
"그보다…. 시로가네 씨가 말하는 그 네버랜드는 어떤 곳이죠?“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네버랜드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곳이야!“
어른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어 키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원히, 라고 말한 것은 절대 자라지도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는 뜻일까? 시로가네가 사용하는 모든 표현이 동화 속에서 갓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논리적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던 평소의 키보에게는 분명 허무맹랑하게 들릴 텐데, 키보는 시로가네의 이야기를 퍽 주의 깊게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최소한 날아서 왔다는 부분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도 있고, 어쩌면 그녀에게서 느낀 묘한 친숙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비논리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한 바퀴 돌아 비현실적인….
"픽션 같은 이야기네요.“
"그렇지! 그렇게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리얼 픽션이네!“
생각난 것을 그대로 내뱉은 순간, 안경 렌즈 너머의 벽안에 유성과도 같은 빛이 튀어 올랐다. 안면에 걸린 밝은 미소는 마음에 드는 소재를 발견한 어린아이의 즐거움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은 굳혔어? 아, 혹시 데려가야 할 동생들이라도 있는 거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당장 떠나도 문제 될 것 없겠네! 나중에 돌아오더라도, 잠시 일상 속의 비일상을 즐기는 정도는 수수하게 괜찮잖아?“
일상 속의 비일상, 그 부분을 속으로 되뇌인 키보는 생각했다.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네버랜드라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렇게 곱씹는 동안에도 그 독특하면서도 영문 모를 권유에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운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기대 어린 눈빛을 이기지 못한 키보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 뜻을 내비쳤다. 긍정적인 답이 돌아오자 시로가네는 곧바로 기뻐하며 키보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대로 망설임 없이 창틀에 올라서더니 허공으로 떼어진 발은 빛을 내는 요정을 따라 가볍게 떠올랐다.
"좋아! 그럼, 함께 네버랜드로 출발이야!“
왜 자신을 택하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왜 권유를 승낙한 것만으로 그렇게나 솔직하게 기뻐하는지. 키보에게는 물어봐야 하는 것도, 대답 받아야하는 것도 아직 잔뜩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밤하늘 저편을 가리키며 이쪽을 돌아보는 시로가네의 모습은, 마치 이 순간을 그토록 고대해왔다는 것만 같아서. 지금 당장은 발 끝의 부드러운 부유감을 만끽하며 맞잡은 손에 힘을 넣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