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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론파_담향_오마 코키치X고쿠하라 곤타].png

 그 할머니는 작은 마을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정성스럽게 키워냈고, 그 딸은 마을을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번화가에서 동떨어진 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정원을 키우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구름이 없고 보름달이 밝은 날이었다. 빨간 망토가 할머니를 위해 생강 쿠키가 가득 들은 바구니를 가져간 때는 그 날의 어두운 밤이었다.

 

빨간 망토의 하루는 새가 지저귈 때 쯤 시작된다. 오마는 빨간 망토를 대강 걸치고 번화가로 미적미적 걸어 나왔다. 오늘은 새벽녘에 심부름을 보낼 생각인지 부르는 시간대에 배려라곤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른 새벽의 공기가 서늘하게 내리 않은 거리에 부지런한 농부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요새 들끓는 굶주린 맹수들의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를 하려는 것이었다.

 

“오마! 아침부터 수고하는구나!”

“..뭐.”

 

오마가 시큰둥하게 농부에게 인사하며 발을 계속 옮겼다. 그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도 오마의 반응은 무례하리만치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오마가 호박농사를 짓는 집주인이 건네준 조그만 쿠키를 우물우물 씹었다. 맛은 있네, 없으면 확 뱉어버리려고 했는데.

 

다리를 멈추지 않은 그 끝에는 이장의 집이 있었다. 백발을 성성하게 기른 노인이 투박한 지팡이를 바닥에 딱, 내리쳤다.

 

“조금 늦었구나.”

“영감이 너무 일찍 불렀으니까 그러지! 나 성장기인데.”

 

오마가 쿠키를 마저 입 안에 털어 넣고 빈정대듯이 말했다. 그 모습에도 노인은 버릇없단 소리하나 하지 않고 손을 뻗어 오마의 몸에 걸쳐진 빨간 망토를 잡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진 손이 빨간 망토를 바르게 피고 오마의 작은 머리 위로 후드를 씌웠다.

 

“잘 어울리는군.”

“엑, 나 늙은이는 취향 아냐.”

 

오마가 시야 위를 가리는 망토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노인의 뒤에서 그의 간병인이 걸어 나왔다. 두 손에는 밀짚으로 정성스레 만들어진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

 

오마가 바구니 안에 담긴 생강쿠키를 휙 집어 들었다. 얇은 쿠키가 오마의 입 안에서 바스라졌다. 그 사이 간병인이 그 위에 체크무늬의 천을 덮었다. 오마가 천을 들추고 재차 쿠키를 꺼내들었다.

 

“아, 내가 밑에 향신료 적당히 깔아달라고 했잖아. 매워.”

 

오마가 반쯤 먹은 쿠키를 휙 바닥에 던졌다.

 

“이번으로 벌써 8번째 심부름인가? 자네는 심부름에 소질이 있구먼.”

“이걸로 다음에는 마지막이다?”

 

오마가 빙글 돌곤 바구니를 손에 쥐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동시에 맵고 짠 자극적인 냄새가 훅 풍겼다. 이번에는 향신료를 더 넉넉하게 깔아둔 모양이었다. 쿠키가 아깝지, 오마가 속으로 혀를 쯧 차며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오늘 바구니를 전해줄 쪽은 남쪽 오두막의 양치기 노인네였다. 최근 늑대에게 양을 제법 잡아먹혔다고 하던데, 언제 직종을 바꿀 건지 모를 일이었다.

 

오마가 남쪽으로 좁아지는 숲 속 길로 향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가 길게 따라붙었다. 아, 오늘은 양치기 노인의 고민이 좀 줄어들지도 모르겠네, 하고. 그들의 생각이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오마가 주머니 안의 작은 쇠칼을 굴렸다.

 

이곳에 마을을 지은 녀석은 멍청이임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짐승이 들끓는 소굴 가운데에 집을 짓고 사람을 모으다니, 단체로 자살이라도 할 셈이었던 걸지도 몰랐다. 마을의 입구를 막 지나면 보이는 비석들의 소굴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저 3개월 된 금간 비석은 이리떼에게 하반신이 씹혔고, 거의 다 무너져가는 저 무덤 아래의 녀석은 밤까지 농사일을 하다가 물려 죽었다. 그리고 조악한 흙 인형이 얹힌 땅의 주인은 맹수 떼에게 뼈 한 조각까지 빠짐없이 오독오독 나눠먹혔다.

 

짐승에게 흔적도 없이 먹힌 자는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울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몰리듯 만들었던 두 개의 흙인형이 생각났다. 이미 시간이 흘러 전부 흙바닥으로 흘러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산짐승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이리 많으니 이런 괴상한 풍습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밤 내내 배를 채우지 못한 짐승이 마지막으로 산 어귀를 돌아다닐 즈음에, 눈에 잔뜩 띄는 붉은 색의 망토를 두르고,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는 향신료 바구니를 든 채 홀로 숲을 돌아다니는 힘없는 아이. 이 맛있는 먹잇감을 배불리 먹고 농사꾼에게 그만 해를 끼치라는 마을의 오랜 관습이었다. 잘 차려진 만찬의 뒤로 거대한 형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짐승의 냄새가 났다. 부스럭, 부스럭 기척을 죽일 생각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거대한 털뭉치가,

 

“오마군!”

 

하고 사냥감에게 반가이 인사했다.

 

“곤타, 온 김에 이거 좀 들어!”

“응? 으아, 매워..”

 

곤타가 큰 손으로 바구니를 들었다. 곤타는 숲을 떠돌아다니는 늑대였다. 이 겁 많고 덩치만 큰 늑대와는 첫 번째 심부름 때부터 만났다.

 

“오마군, 이 아래에 뭐가 있는 거야? 엄청 매운 냄새가 나. 저거 봐, 벌써 이리씨 몇 마리가 왔어.”

 

곤타가 손가락으로 수풀 몇 군데를 짚었다. 저를 닭 쫒던 개처럼 바라보는 짐승의 눈빛에 오마가 비식 웃었다. 곤타가 있는 한 마른 들짐승 몇 마리가 제게 다가올 리 없었다. 혹여나 곤타보다 저 놈들이 일찍 온다 해도 오마가 위험에 처한다면 곤타가 충성스러운 개처럼 뛰어올 게 분명했다. 오마가 그들을 비웃듯이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저기, 오마군. 이제 다음 심부름이 마지막인거지?”

“응. 아- 그럼 이 지긋지긋한 마을에서도 안녕이지.”

 

빨간 망토의 심부름은 잡아먹힐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눈 가리고 아웅질이 아니었다. 9번의 심부름을 하는 동안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신의 가호를 받는 것이라며 다른 빨간 망토 후보에게 그 임무가 넘겨졌다. 이 짓도 벌써 8번째, 다음 심부름에서 곤타의 옆에 꼭 붙어 있는다면 오마는 처음으로 살아남은 빨간 망토가 될 것이었다.

 

“그럼 뭘 할까? 오마군은 그러고보니 동쪽에 가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그걸 그 바보 같은 머리로 잘도 기억하고 있네? 응, 그 쪽으로 가서 바다를 건널 거야. 재밌는 일이 잔뜩 있을 거라구.”

“그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따라가고 싶다고?”

 

오마가 곤타의 말을 끊었다. 정곡을 찔린 눈치인지 곤타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하긴, 이만큼 큰 늑대와 함께하면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루하진 않겠지. 오마가 마치 고려해보겠다는 듯 길게 말끝을 늘렸다.

 

“오마군, 양씨의 우는 소리가 들려.”

 

곤타가 귀를 쫑긋 움직였다. 나무 틈 사이로 느릿하게 이동하는 양에게 그의 시선이 닿았다. 곤타의 목울대가 꿀꺽 울렁이며 내려갔다. 단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순진하게 풀을 뜯는 양을 눈으로 뒤쫓던 곤타가 핫, 하고 탄성을 지르곤 고개를 흔들었다. 배가 고파서 잠시 먹잇감에 눈이 팔렸던 것 같았다.

 

“곤타는 저쪽에 숨어있을 게. 다녀와!”

 

곤타가 웃으며 풀숲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오마는 일부러 귀를 기울여봤다. 잔잔한 산들바람에 잎사귀들이 서로 나부끼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만약에 곤타가 자신을 먹으려 한다면 순식간에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멍청하도록 착한 늑대 같으니. 오마가 목장의 울타리 문을 건넜다.

 

“심부름 왔어.”

 

오마가 바구니를 내밀었다. 남쪽 양치기 노인의 손이 바구니를 쥐어들었다. 입에서는 고맙다는 상투적인 말이 나왔고, 이걸로 8번째구나. 라는 차가운 말이 뒤따랐다. 오마가 입을 불퉁하게 삐죽였다. 자신의 양이 죽을까봐 인간의 모습을 한 양을 사지로 밀어 넣는 모습이 웃기기만 했다. 그 양이 늑대와 친구를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지? 오마가 오두막에서 등을 돌리며 꿍쳐놓은 쿠키를 입에 밀어 넣었다. 향신료 때문에 맵싸한 맛이 났다.

 

불편한 시선들에서 벗어나 안전해진 몸을 눕히고 마음을 둘 곳은, 모순적이게도 마을이 아니라 늑대의 둥지였다.

 

*

그 날 밤은 이상하게 구름이 없었다. 맑은 밤하늘에 둥근 달이 높이 떠올라있었다. 새까만 하늘 아래 숲은 빛 한 점 없이 어둡게 일렁이고 있었다. 배가 고프기 시작한 맹수들이 막 활개 칠 시간 즈음에도 마을의 불빛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밤까지 일하지 않으면 풍부한 작물을 얻을 수 없는 척박한 땅, 굶주린 산짐승들이 도사리고 있는 우거진 숲, 자신의 재물을 잃을 수 없어서 희생양을 택하는 주민들. 뭐 저런 마을이 다 있을까. 오마가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기지개를 쭉 폈다.

 

“오마군, 산열매가 마음에 들어?”

“먹을 만은 하네.”

“다행이다. 곤타는 열매 맛을 못 느껴서 걱정했거든.”

 

곤타가 보라색 열매즙이 잔뜩 들은 손을 나뭇잎에 쓱쓱 비벼 닦았다. 그의 손에서는 야생 열매의 풋냄새가 잔뜩 났다. 육식 동물의 코로는 역겨울 냄새를 풍기며 곤타가 오마의 옆에 탈싹 앉았다. 불빛이 환한 마을을 내려다보는 곤타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 내일이면 여기도 끝이구나.”

“좋지 뭐!”

“그래도 오마군과 만난 곳인걸.”

 

오마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싸늘한 돌과 흙이 등에 닿았다.

 

첫 번째 심부름을 할 때, 이리떼가 하나 둘 씩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길가에서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더라, 흙인형도 없이 뱃속으로 삼켜질 몸뚱이에 대해 생각했었나. 머리부터 깔끔하게 뜯기기를 바라며 걸어가는 발걸음 끝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늑대였다. 달콤한 꽃향기가 배인 망토 위에 텁텁한 누린내가 나는 거적때기가 안개처럼 내려앉았었다.

 

「어?」

 

낡은 천에 가로막힌 시야 사이로 들려왔던,

 

「잠시만 기다려줘.」

 

그 상냥한 목소리가 생각났다.

 

오마가 손을 뻗어 거적때기를 끌어당겼다. 곤타의 냄새가 났다. 늑대의 향이었다.

 

“졸려?”

“응. 곤타, 목이 뻐근하잖아!”

“미안!”

 

곤타가 후다닥 달려와 오마의 머리 뒤에 제 팔을 끼워놓았다. 몸을 왼쪽으로 돌리자 단단한 가슴팍이 머리에 닿았다. 왜 이 녀석은 그 때 내게 달려온 걸까. 사람을 지키려들고 양치기의 양을 먹지 않는 멍청한 늑대. 오마가 손을 들어 곤타의 이마를 콩 가볍게 쳤다.

 

“저기- 곤타는 왜 갑자기 그 때 나타났어?”

 

곤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상하지 않아? 타이밍 좋게 딱 위기에 나타났을 때 딱! 어디 사는 왕자님처럼 말이지. 혹시 곤타, 그 이리떼를 사주해서-”

“아냐! 곤타는.. 곤타는 그냥..”

 

곤타가 얼굴을 솔직하게 붉히며 남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초록색의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눈이 데록 굴러 오마를 향했다.

 

“그..그냥.. 나중에 말해줄게.”

“에? 시시해! 곤타, 그렇게 재미없게 살다간 누구도 곤타와 사귀지 않을 거라고!”

“정말?!”

“그걸 믿어?”

 

오마가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는 곤타의 팔위에 머리를 부볐다. 집 안에 있는 먼지 낀 베개보다 딱딱했지만 든든했다. 등이 아파오도록 딱딱한 흙바닥을 침대로 삼고, 머리 위로 찬바람이 부는 밤하늘을 천장으로 삼아서 잠이 드는 밤은 나쁘지 않았다. 너는 고아니까. 그 때 이리떼가 들이닥친 건 유감이지만, 너는 이리떼에게 부모가 잡아먹혀 거두어갈 사람도 없는 고아니까. 그러니까 빨간 망토가 되어다오. 그렇게 말하던 마을 주민의 뻔뻔한 목소리가 멀어졌다.

 

내일만 곤타에게 의지해서 심부름이 끝나면 동쪽으로 떠날 것이다. 코딱지만한 좁은 마을에서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녀석들을 모아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을 위해서 놀 것이었다. 오마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서서히 내렸다. 닫힌 눈두덩 위로 별 역시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

오늘의 심부름은 달이 중천에 뜨는 때에 시작이었다. 대놓고 저를 죽이겠다는 말이었다. 다들 맹수를 피하기 위해 하나 둘 불을 끌 무렵에 환하게 횃불을 밝히고 모여든 마을 사람들의 눈은 어쩐지 불꽃같은 광기가 어려 있는 듯 했다. 오마가 주민들의 한 가운데에 선 시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서 강한 생강 냄새가 났다. 냄새를 강하게 풍기기 위해 밀가루보다 생강을 더 많이 넣은 것 같았다.

 

“오늘은 ---할머니에게 가려무나.”

“굳이 밤에 그 먼 곳에 가야해?”

 

오마가 딴지를 걸 듯이 말하며 손에 바구니를 받았다. 묵직한 향신료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로 마지막이니까 봐줄게!”

 

그가 날카로워 진 주민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말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되면 내 다음으로 쓸모없고 죽어도 상관없는 아이를 찾아내야 할 테니까. 오마가 어둡게 일렁이는 숲길로 발을 내딛었다. 등 뒤로 부산스럽게 몇몇의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새소리마저 죽은 밤길은 램프 없이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저 멀리서 배를 곪은 짐승들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결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곤타가 한 마리의 짐승도 허락하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었다. 오른쪽에서 훌떡 곤타가 크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오마의 등 뒤를 조심스레 미행하는 사람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두 장정을 합친 것과 같은 크기의 사나운 늑대가 빨간 망토를 덮칠 줄 알았던 것이다.

 

“---할머니, 나 왔어.”

 

주민들의 예상이 무색하게 오마는 숲 속의 작은 오두막에 당도했다.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낡은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 밑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었다.

 

“안으로 들어오렴. 밤중에 고생하는 구나.”

“벌써 아홉 번째인데 뭘.”

 

오마가 어깨를 으쓱이며 보란 듯이 말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냄새와 함께 달콤한 차향이 코끝을 스쳤다. 포근한 느낌을 내는 작은 집의 창문 뒤로 거대한 형상이 잽싸게 지나갔다. 곤타였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내가 운이 좀 좋은 편이라서.”

“그렇구나. 내 딸은 그렇지 못했지.”

 

주홍빛의 단내를 풍기는 차가 오마의 앞에 밀어졌다. 맑은 찻물 위로 세월의 흔적이 깊이 박힌 한 많은 늙은 얼굴이 비쳤다.

 

“그 아이는 고작 두 번째에 죽었어. 정말 예쁜 아이였는데. 그렇게나 착한 아이였는데.”

 

아, 위험한 걸. 오마가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쓸 일이 없었던 쇠칼이 작은 손 안에 잡혔다. 시간이 흘러 늘어진 거죽에 깊게 패인 골이 사납게 울렁거렸다. 노인의 핏발 선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광기가 묻어나는 눈이었다. 노인의 손이 오마의 손목을 불현듯 강하게 잡았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어째 힘이 이렇게 센 건지. 오마가 옷자락 사이에서 날을 자랑하는 쇠칼을 쥐었다.

 

굳은 일을 도맡아 할 구성원이 죽었단 이유로 숲 속에 몰린 내 아이도 죽었는데. 노인의 괴성이 귀에 내리꽂히는 듯 했다.

 

노인의 왼쪽 손에서 금속성의 빛이 반짝였다. 날카롭게 갈린 잼 나이프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덜컥 내리 앉은 흉부가 바닥에서 펄떡이는 것 같았다. 오마가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달려드는 저 후회 많고 분노 가득한, 악바리만이 남은 노인을 막아야 했으니까. 손을 압박하는 차가운 물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어린애처럼 팔을 휘둘렀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던 건 그 때였다.

 

갑작스레 풍겨오는 짐승의 누린내. 찢기는 살덩이와 후두둑 떨어지는 피. 늑대의 큰 입이 벌어졌다 다물렸다. 할머니가 그 입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늑대가 오마의 빨간 망토를 찢고 입으로 씹었다. 그것이 육식동물에게는 달콤할 피가 가득한 입을 열었다.

 

*

등 뒤로 사람들의 소리와 횃불의 불빛이 멀어져만 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마는 동쪽으로 달렸다. 커다란 늑대의 냄새가 가득한 거적때기를 양 손에 꼭 쥐고서 맹수가 가득한 숲 속을 달렸다.

 

녀석이 말했다. 오마군, 곤타가 오마군도 먹은 줄로 알거야. 곤타는 남쪽으로 도망칠 테니까, 오마군은 동쪽으로 도망쳐. 아홉 번째 심부름이 끝났잖아, 그렇지?

 

그 상냥했던 목소리가 기억났다.

 

비록 약해졌지만 생경이 뛰던 심장을 찔러낸 것은 오마의 쇠칼이었다. 그것이 오마의 손에 박힌 듯 아직도 쥐여 있었다. 오마는 동쪽으로 달렸다. 바다를 건너 즐거운 일이 가득할 동쪽으로 힘껏 달렸다. 다리가 아려오고 폐가 짜부라질 것 같이 숨이 메말랐지만 자꾸만 도망 외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너의 답을 듣지 못했다. 그것이, 아마 동쪽으로 건너가 온갖 재미있는 짓을 하는 도중에도 궁금하고 그리울 것이다.

 

~ 심부름을 가는 길에서, 빨간 망토와 할머니는 늑대에게 삼켜졌습니다. 그것을 사냥꾼이 잡아, 배를 가르고 할머니를 꺼냈습니다. ~

빨간 망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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