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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론파_콜라비_히나타 하지메].png

 아주 어렸을 적에는 꿈이 많았다. 대통령, CEO, 교사, 교수, 학자, 연구원, 의사, 화가 등등.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다 그렇듯이. 나는 어릴 적 그림을 자주 그렸다. 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꽤 많았다. 어른들에게 보여주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었다.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도화지를 꽉 채운 그림을 그렸었다.

처음 그린 그림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었는데, 그 섬은 야자수가 자라기도 하고 기계와 공장도 있고, 놀이공원도 있는 섬이었다. 나는 열심히 그린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 대체 무얼 그린거니?”

“섬이예요.”

“히나타. 이런 섬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실제로 있을 만한 것을 그려야지.”

 

어른들은 내 그림을 알아주지 않았다. 물론 칭찬도 없었다. 나는 섬을 그린 도화지를 서랍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새로운 도화지를 꺼냈다. 녹색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크레파스를 꼭꼭 눌러 진하게 칠했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그렸다. 그 옆에는 분홍색 동그라미와 연두색 잎을 그렸다. 크레파스를 휘갈겨 대충 칠하고 말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도 어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이끼와 복숭아구나?”

“쑥떡이랑 사쿠라모찌 예요.”

“히나타. 헷갈리게 그려놓으면 어떡하니.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그려야지.”

 

어른들은 내 그림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그린 도화지를 같은 서랍장에 숨겨두었다. 나는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실제로 있을 만한 것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을 그려보려고 했다.

또 다른 도화지를 펼치고 검은 크레파스를 들었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하나, 둘.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둘. 길쭉한 동그라미를 하나, 둘, 셋, 넷. 나는 두 마리의 곰을 그렸다. 그 중 한 마리는 아주 새까맣게 칠했고, 모자와 안대와 시가-어른들이 종종 들고 있던-를 함께 그려주었다. 남은 한 마리는 붕대를 돌돌 감아주었다. 나는 이것도 어른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곰은 실제로 있는 것이고, 생긴 것도 곰이니 어른들이 인정해줄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 도화지를 펼쳐보였다.

 

“이건 곰이니?”

“네! 얘는 까만 곰이고, 얘는 하얀 곰 이예요!”

“그렇구나. 하지만 히나타, 그림을 그리기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해.”

 

그게 전부였다. 어른들은 역시 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도 서랍장 깊은 곳에 넣어버렸다.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시시하고 딱딱한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차갑고 긴 펜을 손에 쥐었다. 검은 흔적이 문장을 그어내고 붉은 흔적이 강조를 만들어갔다. 사각이고 버석거리는 무기질적인 소리가 귀에 박혔다. 책과 노트와 펜은 어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빈 노트 한 장은 새가 될 수도 있고 나비가 될 수도 있다. 하물며 공룡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책은 모자가 될 수도 있고,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책 여러 권을 쌓아 올리면 탑이 될 수도 있다. 내 주위로 쌓아올린다면 요새가 될 수도 있다. 펜은 크레파스와 색연필과 같았다.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마법의 물건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섬도 그려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그려낼 수 있었다. 하얀 곰도, 까만 곰도 그려낼 수 있었다. 어른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어릴 때,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는 중이었다.

 

 

* * *

 

 

키보가미네 학원 예비학과.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였다. 나는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인지,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서 키보가미네 학원 예비학과에 편입했다. 어쩌면 내겐 서랍장 꼭꼭 숨겨둔 그림처럼,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희망에 불과했고, 나는 예비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변변찮은 재능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모양에 어른들은 파일럿이 되는 것을 제안했고, 나는 정해진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평범하고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며, 어른이 되지도 못한 어린아이이자 어른이었다.

그리고 어른도 아니요,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나는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했다.

 

“엔진을 고치면 다시 날 수 있으려나.”

 

나는 추락한 기계가 만든 그늘에 기대어 흐르는 땀을 훔쳤다. 수통에 남은 물은 찰랑이는 소리를 냈다.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것도 해야 할 일 목록에 추가해야겠네, 따위의 생각을 하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팔을 들어 지금은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기계를 두드렸다. 텅! 날카롭고 속 빈 소리가 났다. 하하,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쓰게 웃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은 손등으로 훔쳐내도 멈출 줄 몰랐고, 결국 눈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비볐다. 눈을 깜빡거리며 땀에 흐려진 시야를 회복하려 애썼다.

불분명한 시야 끝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앳된 목소리여도 괜찮았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필사적으로 눈을 닦아냈다. 수채화 번지듯 일렁이는 시야에 비친 것은 작은 여자아이였다. 이곳은 사막이건만, 피부를 보호할 긴 옷도 아니었다. 짧은 베이지색 치마에 후드 달린 곤색 외투. 빛바랜 분홍색 머리카락. 헛것을 보나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는 입을 열어 무어라 말했다. 토끼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아이가 더위를 먹었음에 분명하다 생각하며 내가 앉은 그늘로 오라 손짓했다.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나는 한 번 더 재촉했다. 거긴 더워. 아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늘에 들어와 섰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길을 잃었니? 아이는 어깨에 매인 가방끈을 꼭 잡고 양 볼을 부풀리며 대답했다. 길 잃지 않았어.

 

“그러니까 토끼 한 마리만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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